[문예마당] 어머니는 나의 롤모델
결혼 25년 차, 어느덧 나이가 50이 넘어가니 시어머니에게 이런저런 투정도 편하게 하는 그런 며느리가 되었다. 항상 “예”만 하던 ‘예스 며느리’였는데…, 시어머니와 오래 함께 살다 보니 날 낳고 키워주신 친정어머니보다 더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면서 시어머니의 인생관과 자녀에 대한 생각을 바로 옆에서 많이 관찰할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한마디로 참 지혜로운 분이다. 팔십대 중반의 적지 않은 연령이지만 여전히 뛰어난 판단력에 지식도 풍부하다. 그래서 무엇이든 시어머니에게 여쭤보게 되고 그럴 때마다 정답을 듣게 된다. 시어머니는 요즘도 매일 꼼꼼히 신문을 읽고 방송 프로그램을 챙긴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스크랩을 해두거나 메모를 하신다. 그러다 보니 특히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지식의 축적량이 상당하다. 시어머니의 캐비닛에는 오래전 스크랩을 해 둔 중앙일보 기사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 처음 시집 왔을 때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잔소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든 것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분이다 보니 외며느리가 불안하게 생각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가 자식들을 키우고 있다 보니 어머니의 마음을 100% 공감하게 된다. 나도 아이들이 배우자를 데려오면 뭔가가 불안해서 이런저런 것에 참견하고 가르쳐주려고 할 것 같다. 어떻게 처음부터 100% 만족감을 주는 사람이 있겠는가? 서로 맞춰가며 서로를 알아가며, 그렇게 시어머니와 23년을 함께 살았다. 돌이켜보니 참 금방이다. 아이들이 자란 것과 우리 부부의 눈가가 살짝 쳐진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듯한데 말이다. 시어머니는 자녀들을 참 잘 키우셨다. 1남 2녀 모두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 둘씩을 낳았다. 그리고 다들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모여 산다. 가끔 자녀들과 떨어져 살고 있다는 분들을 보면 시어머니는 참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어머님처럼만 자식들을 키우면 시집장가 가서도 우리 집 옆에 모여 살겠지라는 상상도 해 본다. 게다가 자녀들 모두 별걱정 없이 신앙생활 잘하며 산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어머님은 참 복이 많은 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님은 참 좋은 남편을 두셨다. 시아버님은 시어머님에게 딱 맞는 반쪽이다. 어머님은 항상 웃는 모습의 아버님과 가끔 토닥거리시기도 하지만 그렇게 사는 부부가 오래 해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두 딸은 매일 번갈아 가면서 어머니에게 전화한다. 그날그날의 소식을 어머님에게 전하려고…. 아들도 어머님에게 할 말이 참 많다. 어머님이 이야기를 잘 받아주셔서 그런 거 같다. 우리 딸, 아들도 나중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저렇게만 했으면 하길 바랄 뿐이다. 어머님은 신앙심도 깊다. 기도를 시작하면 성령 충만하셔서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 어머님의 기도는 항상 우리 자식들에 대한 간구뿐이다. 지금 사는 글렌데일로 이사 오면서 어머님은 거의 매일 동네 산들을 한 바퀴씩 돌고 오셨다. 체력이 참 좋으셨다. 한번 어머님을 쫓아갔다가 며칠을 걷지를 못해 끙끙 앓았는데. 저렇게 정정하시다니…. 평소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한 결과였다. 그런데 지난해 어머님은 폐암 진단을 받았고 그 후 빠른 노화가 시작됐다. 어머님 모습이 하루하루 작아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항상 기대고 싶고, 의논하고 싶던 어머님이었는데 이제는 우리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자식들은 그런 모습에 익숙지 않아 그저 놀라고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게 된다. 하지만 어머님은 항상 밝은 모습으로 우리를 대하신다. “얘야, 인생을 힘들게 살지 말아라. 살아보니 인생은 짧고 한순간이다. 너무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쉬엄쉬엄 편하게 살아라.” 현명하시고, 신실하시며 아름답게 나이 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본받고 싶다. 나의 롤모델은 어머님, 그분을 닮으며 나이를 먹고 싶다. “어머니, 걱정은 내려놓으시고 평안을 찾으세요. 고통이 없기를 기도할게요. 사랑합니다.” 이선경문예마당 어머니 롤모델 지난해 어머님 어머님 모습 어머님 그분